정이현 - 소설과 통하는 시간 문화산책

나는 왜 쓸까. 저는 소통하기 위해 쓴다는 말이 가장 맞는 것 같아요. 소통이란 말이 거대한 의미는 아닙니다. 소설을 쓴다는 게 굉장히 자질구레한 노동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인물이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에 오는 걸 쓴다고 하면 칼이나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10시 25분 비행기가 있는지, 그 비행기 편명은 무엇인지, 50분이 걸리는지 55분이 걸리는지 다 체크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엉덩이 힘으로 쓴다는 말도 합니다. 소설을 한 줄 쓰다가 친구들과 전화하기도 하고, 김치 볶음밥을 해먹기도 하고, 일상을 구가하면서 소설을 쓰지요. 그렇게 제가 일요일 저녁 8시에 쓴 소설이 책으로 만들어져서 어디의 누군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분이 어떤 순간에 그 구절을 읽으시죠. 근데 백만 명의 독자가 있다면 백만 명이 처한 환경이 다 다르잖아요. 어떤 분은 '나는 외롭다'는 한 문장을 아침 출근길 마을버스에서 읽을 수도 있고요, 어떤 분은 남자친구와 헤어지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수도 있고요, 어떤 분은 죽고 싶은 마음에 술 한잔 마시고 들어와 펼치고 읽을 수도 있고요. 작가가 무심결에 던졌던 어떤 한 문장을 수많은 독자들이 각각 다른 순간에 받아들이지요. 그렇게 독자와 작가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같은 것. 그런 순간을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런 것 때문에 쓰는 것 같아요.  - p.72

<하얀 전쟁>을 쓰신 안정효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 되면 그대부터 새로운 거다. 작가가 그에 대해 이야기할 건 없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TV 드라마로 나왔습니다. 그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 역시 안정효 선생님 말씀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원작자가 너무 상처를 받아요. 내 자식 같은 작품인데 딴 사람에게 내 자식을 시집 보내놨으니 어떻게 하나 보자,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보다보면 끝이 없어요. 본인만 힘듭니다. 자식이 결혼하면 그 다음에는 거리를 둬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드라마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요. 판권을 넘기고 나서는 캐스팅 소식도 건너서 들었고, 제가 할 부분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저 역시 일반 시청자처럼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TV를 봤습니다. 가끔 제가 원작자란 사실을 잊고, 쟤들은 어떻게 될까, 태호랑 잘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도 했고요. 저는 정말 떨어져서 봤습니다.  -p.74



+ 팝툰 44호, 씨네21, 2008.1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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