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 _ 열정을 염가판매합니다 문화산책

연말공연을 앞두고, 지인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띵동 - '공연 표 두 장만.'
답장 - '이번에 내가 쓸 수 있는 초대권은 다 나눠줬는데. 이번만 그냥 오면 안 돼?'
띵동 - '내가 왜 돈 내고 그 공연을 보러 가냐?'

가볍게 생각하면 나름 가까운 사이니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자기 티켓을 남겨놓지 않았다는 게 서운해서 한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정말로 화가 났었다. 그 사람과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정도였으니까. 누가 보면 그 몇만 원 때문에 그렇게까지 반응할 필요 있겠느냐고 할지도 모를 이야기지만.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에는 이런 연이 있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내 심보하고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도량이다. 한 번 사두면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시집 한 권이 몇천 원. 하루 보면 기록해두기도 어려운 공연이 한 번에 몇만 원. 시인이나 가수에게 돌아가는 몫이 얼마든 간에, 어쨌든 돈을 내고 와주는 사람은 다른 곳에 쓸 수도 있었던 돈을 그만큼 아껴 여기에 투자한 것이다. 국밥 대신 시집을, 새 옷 대신 공연을. 그렇게 생각하면 와주시는 분들이 은인이요, 사소한 말 한마디에 삐치는 내가 소인배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누구라도 좋으니 잠시 멈춰서 내 노래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마지않던 올챙이 시절을 잊은 배부른 개구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힘이 빠진다. 티켓값 몇만 원 때문이 아니다.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들쑥날쑥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여기선 어떻게, 저기선 어떻게, 한껏 신경을 곤두세우고 준비해온 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공짜라면 가볼 만도 하겠지만 돈이 들면 관두겠다, 내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그 정도의 가치밨에 없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클래지콰이' 3집 앨범을 발표한 직후 나에겐 이런 쪽지가 오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고등학생 팬입니다. 이번 앨범 저무 좋아요. 그래서 그런데 음악 파일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메일주소는…….'

참, 이쯤 되면 뭐라 할 말도 없고 화조차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등학생에게 연민이 생기기까지 한다. 오죽하면 이런 쪽지까지 보냈을까. 실제로 한참을 고민했다. 집안형편이 어려운 학생일 수도 있는데, 보내줘야 할까. 돈이 없다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다행히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머리가 마비되기 직전, 인터넷이 된다면 수많은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그 학생이 파일을 직접 구할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뻔히 정해진 순서로, 가수나 작곡가들이 불법 다운로드 근절 캠페인 같은 거라도 벌일라치면 네티즌들은 돈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음반이나 만들어놓고 떠들라고 응수한다. 커피 한두 잔이나 찜질방 한두 시간이면 몰라도, 앨범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시간과 공을 들여 소중히 만들어낸 앨범은 갈가리 흩어져서 한 곡씩 잘려 컬러링이나 벨소리, 미니홈피 배경음악이 되어 염가에 팔려나간다. 아니, 그렇게라도 팔리면 다행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블로그에 첨부된 음악을 찾아 컴퓨터에서 무한반복시키고 있다.

함민복 시인은 '시집 삼천 원'과 '국밥 삼천 원'의 가치를 가늠한다. 하지만 그건 소설가 김훈의 말에 따르면 그가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흔치 않다. 그러니 나같이 평범한 피에로는 그냥 계속 울면서 광고하고 다니는 수밖에. 열정을 염가판매합니다! 열정을 염가판매합니다!


+ 호란, 호란의 다카포, 마음산책, 2008, p.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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