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621 |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문화산책

우리 모두가 새로 경험하게 되는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도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이겠지만, 연애라는 "케케묵은" 문제를 놓고 비상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대부분이 연애를 경험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연애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을 독자로 앉혀놓고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드 보통은 이 책에서 1인칭 화자와 클로이라는 여자가 엮어나가는 러브 스토리를 제시하면서 그 의미를 캐나가는데, 그 스토리가 또 대단히 도전적이다. 무엇인가 색다르고 독특한 이야기라서 도전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도전적이라는 것이다. 극소수의 색다른 경험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보았을 뻔해 보이는 연애담에서, 그들 모두가 미처 몰랐던 의미들을 끄집어내겠다는 것은 대담한 시도가 아닌가.

- 정영목, 역자 후기, p.276


14. 내가 클로이에게 인격은 아메바 같은 데가 있다고 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는 학교 다닐 때 아메바를 그리기 좋아했다고 대꾸했다.
"거기 신문지 좀 줘봐. 내가 내 아메바-자아의 모습이 사무실에 있을 때하고 너하고 있을 때하고 어떻게 다른지 그려볼게."
그녀는 가방에서 연필을 꺼내더니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 꿈틀거리는 건 다 뭐야?"
내가 물었다.
"아, 그건 내가 너하고 있을 때는 꿈틀거리는 느낌이기 때문이야."
"뭐?"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여지를 주잖아. 그래서 나는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야. 너는 나한테 관심이 있고 나를 더 잘 이해하니까, 나는 꿈틀거릴 수가 있는 거지. 따라서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거야."
"알겠어. 그럼 이 직선은 뭐지?"
"어디에?"
"아메바의 북서쪽 상단에."
"쉬운 말로 해, 내가 지리에는 빵점이었다는 걸 알잖아. 아, 그래, 어딘지 알 것 같아. 글쎄, 너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잖아, 안 그래? 그래서 좀더 현실적으로 그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 직선 부분은 네가 이해 못 하는 측면, 또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측면이야."
"아."
"어머나, 우울한 얼굴 하지 마. 그 선마저 구불구불해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싶지 않을걸! 어쨌든 걱정 마. 그게 그렇게 심각한 거라면, 내가 여기서 이렇게 너와 함게 행복한 아메바로서 질퍽거리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니겠어?"

- p.152~153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청미래, 200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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