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새로 경험하게 되는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도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이겠지만, 연애라는 "케케묵은" 문제를 놓고 비상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대부분이 연애를 경험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연애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을 독자로 앉혀놓고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드 보통은 이 책에서 1인칭 화자와 클로이라는 여자가 엮어나가는 러브 스토리를 제시하면서 그 의미를 캐나가는데, 그 스토리가 또 대단히 도전적이다. 무엇인가 색다르고 독특한 이야기라서 도전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도전적이라는 것이다. 극소수의 색다른 경험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보았을 뻔해 보이는 연애담에서, 그들 모두가 미처 몰랐던 의미들을 끄집어내겠다는 것은 대담한 시도가 아닌가.- 정영목, 역자 후기, p.276
14. 내가 클로이에게 인격은 아메바 같은 데가 있다고 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는 학교 다닐 때 아메바를 그리기 좋아했다고 대꾸했다.
"거기 신문지 좀 줘봐. 내가 내 아메바-자아의 모습이 사무실에 있을 때하고 너하고 있을 때하고 어떻게 다른지 그려볼게."
그녀는 가방에서 연필을 꺼내더니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내가 물었다.
"아, 그건 내가 너하고 있을 때는 꿈틀거리는 느낌이기 때문이야."
"뭐?"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여지를 주잖아. 그래서 나는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야. 너는 나한테 관심이 있고 나를 더 잘 이해하니까, 나는 꿈틀거릴 수가 있는 거지. 따라서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거야."
"알겠어. 그럼 이 직선은 뭐지?"
"어디에?"
"아메바의 북서쪽 상단에."
"쉬운 말로 해, 내가 지리에는 빵점이었다는 걸 알잖아. 아, 그래, 어딘지 알 것 같아. 글쎄, 너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잖아, 안 그래? 그래서 좀더 현실적으로 그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 직선 부분은 네가 이해 못 하는 측면, 또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측면이야."
"아."
"어머나, 우울한 얼굴 하지 마. 그 선마저 구불구불해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싶지 않을걸! 어쨌든 걱정 마. 그게 그렇게 심각한 거라면, 내가 여기서 이렇게 너와 함게 행복한 아메바로서 질퍽거리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니겠어?"
- p.152~153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청미래, 200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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