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시민아파트 여행길

1960년대 농어촌 인구의 서울집중으로 인한 주택난 해소와 판자촌 정비를 위해 서울시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시민아파트를 건설한다. 서울시는 진입로, 부지조성, 골조공사를 담당하고, 입주자는 건물 칸막이와 내부 상하수로 공사를 분담하는 조건으로 주로 국공유지가 많은 산꼭대기에 집중 건설, 공급하게 되었다.

1970년 4월 와우시민아파트 붕괴사고를 계기로 1972년부터 시민아파트 건설사업은 중단됐고, 1994년과 1995년에 발생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재난관리법이 제정, 시행된다. 이 법에 의거하여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시민아파트는 붕괴 우려가 높은 E급으로 분류, 1997년 8월 시민아파트 정리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정리작업에 나서게 된다.

국내 최초의 중앙집중식난방, 수세식 화장실과 나무마루를 갖춰 근대식 아파트로 그동안 많은 유명인사와 연예인들이 거쳐 갔으며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등 인기영화 배경장소가 되었던 중구 회현동 소재 남산 3호터널 옆 회현시민아파트 1개동 315세대 철거를 마지막으로, 2006년 기준 총 32개 지구 434개 동 17,365 가구(전용면적 11평)를 정비하여 시민아파트란 이름은 36년 여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시민아파트는 이제 공원(동숭, 낙산, 김포, 본동, 연희A, 홍제, 청운, 청파, 도봉, 숭인, 영흥, 창신지구), 재건축·재개발(녹번, 연희B, 중구삼일, 월곡, 금화지구), 공공용지(남현, 회현1)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중 서대문구 천연동에 위치한 금화시민아파트는 1969년에 건립된, 19개 동 850가구의 규모를 자랑하는 최초의 시민아파트였다. 여느 시민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산비탈에 자리잡아 서울 시내가, 북한산이,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전경을 자랑했던 금화시민아파트. 이제는 그 자리를 2006년에 입주를 시작한 9~18층 15개 동 1,008세대의 주공 천연 뜨란채에 내주었다.  


+ 금화시민아파트 | 서대문구 현저동 | 000701 | Nikon F801s | SIGMA 28-80mm F3.5-5.6

무더위가 한창인 2000년 7월 1일이었다. 철거를 앞둔 금화시민아파트는 이주로 분주했고, 벽 여기저기에는 보상 문제로 불만을 토로하는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7월의 녹음만이 흉물처럼 버티고 서 있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그 푸르름을 더하고 있을 뿐.


2008년 2월 16일. 7년 7개월만에 다시 찾은 서대문구 천연동. 이진아기념도서관 뒤쪽으로 난 허름한 샛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말끔하게 정비된 안산 산책로로 접어든다.
 

인왕대-천연마당-숲속의 쉼터-안산마당-하늘공원-자생초화원-송죽원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은 평탄하고 곳곳에 꾸민 테마마당은 소박하지만, 봄이면 제법 볼거리를 제공할 모양새다.


송죽원에서 마주하는 주공 천연 뜨란채. 금화시민아파트가 있던 자리다. 앞쪽으로는 남산이, 옆으로는 북한산이, 또 다른 쪽으로는 한강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진다. 송죽원으로 인도하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안산 능선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돌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돌계단은 이내 작은 오솔길로 이어지고, 이런 운치 있는 길은 안산 구석구석을 수놓는다.


그 길을 따라 5분을 채 올라갔을까. 거짓말처럼 눈앞에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아파트 너머로는 청와대의 파란 지붕이 시선을 끈다.


서울의 4개 내산(內山)의 하나인 인왕산의 모습이다. 서울성곽이 오른쪽 허리춤을 둘러 있고, 그 너머로는 북한산이 자리잡고 있다.


셀카족을 위한 배려일까? 산등성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이름 없는 정자에 거울 하나가 놓여 있다.


평탄한 산등성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으로는 인왕산, 북한산, 남산, 서울시내가, 왼쪽으로는 여의도, 신촌, 한강이 잎을 떨군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끊없이 펼쳐진다. 조금 걸으면 육모정을,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안산 정상인 봉수대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를 만나게 된다. 


우수조망명소라는 안내판 너머로는 인왕산이, 북한산이, 그 사이에 자리잡은 평창동 주택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봉수대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지만 5분이면 정상으로 안내한다. 바위 가득한 등산로 너머로는 남산과 N서울타워, 서울시내다.


정상이다. 산등성을 수놓은 저 길의 끝에서 295.9m의 정상까지는 불과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앞에 놓인 바위는 거북이를 닮아 있다. 목을 쏙 빼고 인왕산을 바라보는 모습이란.


안산의 다른 쪽, 그러니까 북아현동, 대신동, 연희동 쪽은 천연동이나 홍제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경사도 완만하고 무엇보다 산책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다. 아직도 눈이 곳곳에 쌓인 안산 산책로와 달리 남서향인 이 곳은 햇살이 가득하다. 안산도시자연공원은 이 쪽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 중심에는 모악정이 있어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모악정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 옆에도 어김없이 거울이 놓여 있다. 누굴까? 거울을 놓을 생각을 한 사람은.


모악정을 떠나 옥천약수터에서 맥천약수터에 이르는 길은 마치 수목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러 나무가 종류별로 무리를 지어 자생하고 있는데 그 시작을 알리는 자작나무 숲이다. 겨울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 줄기가 인상적인.


다음으로는 메타세콰이어 숲이다. 아직 허리는 가늘지만, 곧게 뻗은 자태는 늠름하다.


산을 내려와 연흥약수터에서 연북중학교에 이르는 길은 겨울인데도 가을 분위기가 한창이다. 낙엽을 흩뿌린 듯, 붉은 색이 운치를 더하는.


감히 말하건데, 안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북한산,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다른,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훨씬 그럴듯한 그림을 선사한다. 500m가 넘는 북한산에서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거만함이 없다. N서울타워라는 뾰족한 인공물 주변을 둘러싼 관광객의 번잡함도 없다. 도시자연공원이라는 말처럼 300m가 채 안 되는 안산은 그렇게 지역 주민과 호흡을 함께 하는, 우리네 뒷동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 서울안산 | 서대문구 | 080216 | Nikon D100 | Tokina 20-35mm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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