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수림) 먹거리

매실고추장삼겹살 한석쇠(2인) 15,000원
삼겹낙지구이 한석쇠 25,000원 - 낙지, 삼겹살, 깻잎지

www.esulim.com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472-3
031-987-9914


[빵집] 부산 B&C 먹거리

정직을 담다, 추억을 부르다, 자부심이 들다

#1984년 가을 부산. 초등학생 시절, 고교에 다니던 언니를 따라 시내에 간 적이 있다. 부산 남포동·광복동·창선동 일대를 부산 사람들은 시내라고 한다. 당시엔 극장도, 백화점도, 패스트푸드점도 모두 시내에 가야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고소한 냄새가 났다. 58년 창립한 고려당(프랜차이즈가 아닌 부산의 자체 브랜드)에서 크로켓 튀기는 냄새였다. 언니를 졸라 한 개를 얻어 먹었다. 그러다 그 빵집 건너편에 영어 간판을 단 가게에 눈길이 갔다. ‘B&C’. 브레드 앤드 케이크란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언니는 “지난해 생긴 빵집인데 맛있대”라고 했다.

#2009년 가을 부산. 25년 전의 그 거리에 다시 섰다. 극장가를 거쳐 빵집 골목 쪽으로 들어오니 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매장의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근처에 있어야 할 고려당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창립 50주년이던 지난해 문을 닫았다고 했다. 대기업 브랜드 베이커리에 맞설 수 없어서였단다. 그뿐이 아니었다. 황태자·하얀풍차 등 부산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개 정도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빵집들이 그야말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오직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집은 B&C뿐인 듯했다.

‘Pride of Pusan(부산의 자존심)’. B&C 김준욱 사장의 명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는 27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대기업 빵집들의 공세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B&C 건물 4층의 공장에선 하루 종일 빵과 쿠키와 초콜릿이 구워진다. 즉석빵이 품어내는 따뜻한 향과 고소한 맛은 윈도베이커리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우리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린 살아남았고, 우리의 방식대로 계속 자리를 지킬 겁니다.”

김 사장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은 이 빵집이 처음 생겼던 때의 방식과는 좀 다른 듯했다. 과거 이 빵집은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다. 예를 들어 밤식빵의 경우, 이를 최초로 개발한 건 아니었지만 대중화를 이끈 곳은 B&C였다. 당시 사장까지 직접 나서 포장할 정도로 히트를 쳤고, 서울에서나 맛볼 수 있는 빵들을 부산에선 처음 소개하며 명성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요즘 B&C는 추억의 빵들이 더 큰 인기다. 매장 한 벽을 차지한 쇼 케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든 버터케이크들이다. 둥근 케이크에 하얀 버터를 바르고 반짝이는 빨간 젤리가 얹어져 있는 그 옛날 케이크 말이다. 어른들 생신 때나 내놓던 2단 버터 케이크도 있다.

“요즘도 저런 걸 먹나요?” 기자의 질문에 김 사장은 “우리집에선 하루에 적어도 100개가 팔린다”며 웃는다.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은 롤케이크. 2개짜리 세트가 1만원인데 포장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전병과 호두과자도 베스트셀러다. 대부분의 제과점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전병을 사다 파는 반면 이곳에선 직접 만든다. 호두과자도 겉은 얇고 속은 팥소가 꽉 차고 호두가 통으로 씹히는 맛으로 인기다. 물론 크림치즈 빵, 고구마 치즈 케이크 등 신세대 입맛에 맞춘 빵들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신제품의 매출은 전통빵에 못 미친다.

코 앞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B&C가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김 사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싼 재료를 쓴 적이 없다. 정직한 맛에 대해 시민들이 평가해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밀가루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밀가루 파동 때도 B&C 창고엔 100부대 이상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신뢰로 거래해 온 거래처가 B&C를 위해 미리 챙겨두었다는 것이다. 또 이곳 직원들은 한번 들어오면 뿌리를 박는 사람이 많다. 공장장도 15년 이상 근무했고, 현재 매장 관리 과장은 고교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충성도도 높다는 것이다.

재밌는 일화도 많다. 부산엔 드문 영어 상호에 어르신들은 이곳을 ‘ABC’ 과자점이라고 부른다. 고교 시절 B&C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부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매장을 찾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김 사장은 “서울 출장을 가려고 부산역에 가면 우리 가게 쇼핑 가방을 든 분이 무척 많다”고 자랑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옛맛을 잊지 못해 들러 빵을 사가는 출향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B&C는 계속 ‘부산의 자랑’이란 자부심으로 맛있는 빵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중구 창선동1가 24번지, 051-245-2363, www.bnccake.com


+ 중앙일보 | 091105 | 이가영 기자

[걷기] 대전 회덕 여행길

대전 하면 먼저 신흥 아파트도시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전은 1000년 선비문화가 면면히 전해오는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회덕분기점’으로 많이 알려진 회덕에 답이 있다. 회덕(懷德)은 ‘덕을 품었다’는 뜻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쓰인 고을 이름으로, 지금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속한다. ‘대덕’이란 지명은 일제강점기 대전과 회덕에서 한 글자씩 따와 만든 것이다. 이곳 아파트숲 사이사이에 ‘덕을 품은’ 옛 고을의 자취가 뚜렷하다. 대덕문화원을 출발해 동춘당을 거쳐 비래골 옥류각까지 걷는다.

장승과 굴다리가 손님을 맞아

읍내동 대덕문화원(겸 대덕문예회관)에서 여행지도와 자료를 챙긴 뒤 걷기 시작한다. 읍내동은 옛 회덕현 관아가 있던 데서 비롯한 지명이다. 길 건너 읍내사거리에서 우회전해 3분 거리에 ‘당아래 돌장승’이 있다. 장승이라기보다는 남성 성기를 닮은 돌(높이 76㎝)이다. 장승 옆에서 신문·상자 등을 모아 묶던 장순애(86) 할머니는 “저 당산 아래 배배마을(갑천 배 대던 곳)에 있던 걸 이리 뫼셔온 것”이라고 말했다.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1831년)와 회덕동 주민센터 마당에 늘어선 관찰사·현감 등을 기리는 선정비·불망비 16개를 보고 뒷골 쪽으로 간다. 한 쌍의 돌장승이 기다린다. ‘뒷골 장승’이다. 키 큰 남장승, 키 작은 여장승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어 낡고 후미진 뒷골 풍경이 정겨워진다.

» 회덕 동춘당(보물 209호)은 동춘 송준길의 별당이다. 왼쪽 한 칸이 온돌방인데 굴뚝을 세우지 않고 벽 밑에 구멍만 뚫어놓았다.

장승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기찻길 밑 굴다리 행렬이 이어진다. 100여m를 걷는 동안 무려 8개의 높고 낮고, 길고 짧은 굴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경부선 철도 대전조차장 주변이다. 마지막 굴다리는 아치형 터널로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이다. 주민들은 ‘구철뚝’으로 부른다. 굴다리 사이사이엔 옛 골목 풍경들이 남아 있다. 30년간 방아만 찧어 왔다는 ‘뒷골방아간’ 지나 큰길로 올라선다. 길 건너 소공원 옆에 제월당이 있다. 제월당은 조선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제월당 송규렴’이 살던 집의 별당이다. 문이 잠겨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큰길(계족로)을 두고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한 뒷길을 따라 걷는다. 응봉근린공원에 옛 한옥 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 조선 후기 유학자 손우당 홍석의 아흔아홉칸 집이 있었다고 한다. 법동초교 쪽으로 나와 보람아파트 끼고 계족로 네거리로 가면 길 양쪽에, 법천 물길에 있던 ‘법동 돌장승’ 한 쌍이 있다. 남녀 장승을 각각 작은 검은색 선돌과 함께 세운 점이 특이하다. 법동2동 주민센터 뒤로 들어가 법동시장을 지난다. 10여년 전 자연적으로 생겨난 재래시장이다. 시장길 끝 왼쪽에 정려각이 하나 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은진 송씨 부인을 기려 영조 때 내려진 정려다. 조선시대 회덕을 말할 때 은진 송씨를 빼놓곤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학자 쌍청 송유가 정착한 이래 세거를 이뤄 우암 송시열, 동춘 송준길 등 유학자를 배출했다.

» 송애당 앞엔 법천 물길에 있던 ‘법천 석총’ 석각 바위를 옮겨다 놓았다. 동춘 송준길의 글씨다.

길 건너면 중리동. 왼쪽으로 나무 우거진 공원이 나타난다. 송애당이다. 효종 때 충청관찰사를 지낸 송애 김경여가 지은 별당으로, 앞서 만난 정려각의 주인 ‘은진 송씨 부인’이 바로 김경여의 어머니다. 별당이란 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주인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맞이 장소로 쓰인 별채를 말한다. 송애당 들머리엔 법천 물길에서 옮겨온 ‘법천 석총’(동춘 송준길의 글씨)이 새겨진 바위가 놓여 있다. 길은 쌍청당으로 이어진다. 쌍청당은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이자 은진 송씨 입향조인 송유의 호다. 세종 때 처음 지어진 고택의 별당 건물인데 단청을 한 점이 특이하다(세종 때부터 민가엔 단청을 금지했다). 오래된 배롱나무들이 우거져 드리운 그늘이 그윽하다. 송유 고택은 문이 잠겨 있어도 벨을 누르면 열어준다.

송유의 어머니 고흥 류씨 부인 정려각과 정려비(송시열 글씨)를 보고 음식점 즐비한 송촌동 골목을 걷는다. 손두부집 뒤 큰길 옆에 ‘상하송촌리 삼강려’(上下宋村里 三綱閭)라 쓰인 커다란 바위가 있다. 충신·효자·열녀를 모두 배출한 마을이란 뜻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가 함락되자 자결한 이시직 정려각을 거쳐 소방서 네거리로 나선다. 대각선 길 건너에 동춘당공원이 있다.

» 동춘당 뜰엔 벽오동 한 그루가 서 있다. 뜰에서 주운 벽오동 열매.

회덕 별당 건축물 탐방의 하이라이트가 동춘당이다. 대전이 자랑하는 보물(209호)이자, 지역 역사문화 교육의 기본이 되는 유적이다. “대전시민들이 초·중·고생 때 꼭 한 번씩은 거쳐간다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인 동춘당공원에선 ‘동춘당 옛 모습 찾기 조경공사’가 한창이다.

동춘당공원엔 효종 때 이조·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1606~1672)의 별당 동춘당과 고택, 사당, 그리고 송준길의 손자인 송병하가 살던 ‘송용억 가옥’이 있다. 동춘당은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뤄진 정면 3칸, 옆면 2칸의 아담한 건물이다. 굴뚝을 세우지 않고 벽 아래 네모난 구멍만 뚫어놓은 게 특이하다. 현판은 송준길과 숙질간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으로, 원본은 종중 사무실에 있다. 키다리 소나무와 오동나무·감나무, 거대한 팽나무들이 담 안팎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땅에 떨어진 벽오동 잎에 돋은 열매를 까 맛보았다. 고소하고 은은한 맛이다.

송준길 고택엔 14대 종손이 살고 있다. 내외담 옆 굴뚝의 태극무늬와 팔괘 장식이 이채로워 눈여겨볼 만하다. ‘호연재 김씨부인 시비’, 4월이면 “300년 된 영산홍이 불타오르듯 꽃을 피운다”는 송용억 가옥, ‘송씨3세 효자 정려구허비’ 등을 차례로 만난다. 은진 송씨 집안의 가양주로, 이름난 전통술 송순주가 전해온다.

» 고흥 류씨 부인 정려각과 정려비. 비문은 동춘이 짓고 우암이 썼다.

동춘당공원을 나와 담을 끼고 돌아 경부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통과하면 계족산 자락 비래골이다. 고성 이씨 집성촌이다. 먼저 반기는 것이 570년 됐다는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와,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덮개식 고인돌 둘이다. 매봉(응봉)을 바라보며 비래암으로 오른다. 길은 포장공사중이다. 잠시 오르면 길옆 바위에 송준길이 썼다는 ‘초연물외’ 글씨가 보이고, 계곡 물길에 올라앉은 옥류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량이 늘면 옥류각 밑으로 흘러 바위로 떨어져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은 낙서금지

옥류각은 제월당 송규렴 등이 1693년 동춘이 강학하던 곳을 기념해 세운 누각이다. 안에 걸린 여러 판각 글 중엔 ‘공부하러 온 학생들은 벽에 낙서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도 있다. 동춘 송준길이 종이에 써서 비래암 벽에 붙였던 것을 후학들이 판각한 것이다. 비래암 현판 밑에 걸린 우암 송시열이 쓴 ‘비래암 고사기’에 이런 내용과 함께, 동춘과 어울렸던 모임을 추억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내려와 비래골 느티나무 주변 손두부집에서 허기를 달랬다. 대덕문화원에서 비래암까지 7㎞를 걸었다. 4시간 반. 다소 먼 거리여서 회덕동 일대와 송촌동 일대를 나눠 걷는 것도 좋겠다.

 

»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킹 쪽지

⊙ 경부고속도로 대전나들목을 나가 직진, 고속버스터미널 앞 지나 17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한다. 대덕구청 앞 오거리 지나 17번 국도 따라가면 읍내사거리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대덕문화원(문예회관)이 있다. 골목 안에 주차장이 있다. 문화원에 주변 문화유적 자료가 풍부하다. 대덕문화원 (042)627-7517. 대전문화관광해설사협회 (042)226-8413. 닭백숙·청국장·손두부를 내는 비래골손두부 (042)622-6595, 추어탕과 추어칼국수를 잘하는 송촌동의 대청마루추어칼국수 (042)632-7640. 계족산 산행, 화폐박물관·지질박물관 등 박물관 투어도 해볼 만하다. 10월20~26일 대전에선 제90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 한겨레 | 091015 |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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