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10 인도양 부근 추락

예메니아 항공 소속 에어버스 A310기가 추락한 인도양의 섬나라 코모로 인근 해역에서는 30일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생존자 한 명이 구조되고 시신 3구를 인양했지만 나머지 승객의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파리 드골 공항에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했으며 생존자 수색을 위해 2대의 군용기와 군함 한 대를 사고 해역으로 파견했다.

사고는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던 중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예멘의 수도 사나를 떠나 코모로 본섬의 수도인 모로니로 향하던 항공기는 착륙 예정 시간을 15분 앞둔 30일 오전 1시51분쯤 모로니 공항과 교신이 두절된 뒤 인도양 해상에 추락했다. 모로니 국제공항의 유엔 관계자는 “공항 관제소에서 사고기가 착륙하겠다는 통지를 받은 뒤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사고기가 추락할 당시 시속 115㎞의 바람이 불고 해상의 파도가 매우 거세게 이는 등 기상 상태는 매우 나빴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러나 기체 결함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도미니크 뷔스로 프랑스 교통담당 국무장관은 현지 TV와의 인터뷰에서 “사고기가 2007년 프랑스교통공사(DGAC)에서 기체 점검을 받을 때 많은 결함이 발견됐다”며 “그 뒤로 프랑스에서 점검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멘 당국은 “지난 5월 에어버스사의 감독 아래 완벽한 점검이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고로 최근 한 달 사이 세계 주요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의 항공기 2대가 추락했다.


+ 중앙일보 | 090701 | 하현옥 기자
by 에스진 | 2009/07/01 13:37 | 비행기 | 트랙백 | 덧글(0)

세운상가, 최초의 주상복합

1966년 6월 20일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중구청의 6급 공무원인 이을삼씨가 낸 아이디어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다. 이날 보고 내용은 종묘 건너편에서 시작해 청계천로, 을지로, 퇴계로를 가로질러 형성된 종로~필동간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이곳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첨단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빈민들이 우후죽순으로 몰려 살았던 이곳은 일제시대 때는 소이탄(불을 질러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폭탄) 투하에 대비해 공터로 남겨 놓았던 소개지였다.

이 계획에 대해 박 대통령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고무된 김 시장은 곧 바로 이곳에 살고 있던 수천명의 빈민들을 서울 외곽으로 몰아내고 건축 설계에 들어간다. 여기에 참여했던 건축가는 당시 정치권과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굵직한 사업을 전담했던 김수근씨와 그가 부사장으로 있었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도시계획 부장이었던 윤승증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1966년 어느날 시장, 부시장에게 신용을 갖고 있었던 김수근 선생에게 시장이 문제의 땅(세운상가 터)의 이용방법을 물어 왔을 때 즉석에서 보행자몰, 보행자데크, 입체도시 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공감을 얻었다.(중략) 이 구상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필자에게 명해졌고 최초의 스케치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은 단 몇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윤승증 ‘건축’ 1994년 7월호 ‘세운상가이야기’, 손정목 ‘국토’ 1997년 6월호 ‘서울도시계획이야기14’>

이런 과정을 거쳐 처음 설계된 세운상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개념과 기술이 적용됐다.

건물과 건물을 2층이나 3층에서 연결하는 공중보행데크를 비롯해 5층에 인공대지를 설정해 공중정원을 만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높이 올라가면서 층을 계단식으로 후퇴하게 해 바람과 햇빛을 잘 들게 하는 구조를 적용하고 지상 1층을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할애한다 개념도 당시에는 ‘혁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대는 이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구상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다. 건설 과정에서는 최초 설계를 주도했던 서울시가 뒤로 빠지고 민간업체들이 사업을 전담했기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들은 도시 경관이나 첨단 건축 기술 보다는 분양과 임대 수익을 올려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다 보니 최초 이상적인 설계는 무시됐다.

이에 대해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는 ‘서울 도시계획이야기, 아 세운상가여,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도시파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세운상가는 현대와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 등 6개 기업과 아세아상가번영회, 청계상가(주)를 합쳐 8개 업차가 분할, 시공하기로 결정됐다.(중략) 1968년 들면서 대림, 청계, 삼풍, 풍전, 신성, 진양 등 상가아파트와 호텔이 하나씩 준공됐다.(중략) 이 건물군은 (도도한 기업 논리에 의해) 당초의 구상과 전혀 다른 매우 추악한 모습으로 실현된 것이다.”

결국 첨단 건축 기술의 전시장이 될 뻔한 세운상가는 각각의 주상복합이나 호텔로 건립됐다. 종로~퇴계로 사이에 현대상가(13층), 세운가동상가(8층), 청계상가(8층), 대림상가(12층), 삼풍(14층), 풍전호텔(10층), 신성상가(10층), 진양상가(17층)가 특징없는 모양으로 들어섰다. 총 연면적은 20만6025㎡, 최대 864세대가 거주하는 주상복합타운이 됐다.

세운상가가 건설될 무렵 언론들은 철근 7000t과 시멘트 87만부대 등 엄청난 자재를 사용해 만든 동양 최대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1966년 8월 세운상가 프로젝트의 첫 사업인 아세아번영회 기공식에서 김현옥 시장이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휘호를 써 ‘세운’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하지만 최초의 이 주상복합타운은 나중에 볼품없는 외관으로 서울 도심의 경관을 헤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지목된다.

세운상가는 준공 이후 7~8년간 서울의 명소로, 또 영화배우와 정치인 등 거물급들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로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강남 아파트가 개발되고 도심에 롯데와 신세계 등 최신 백화점과 용산전자상가 등이 조성되면서 슬럼화되고 말았다.

1970년말부터 세운상가는 일반 의류와 정상 제품 외에도 각종 싸구려 모조품과 해적판 레코드, 도색 잡지 등을 파는 음침한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이에 따라 도심을 살리기 위해 세운상가를 하루 빨리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랜 검토 끝에 서울시는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을 위해 세운상가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의 하나인 세운녹지축 조성 작업에 근거해 2008년말 현대상가를 시작으로 8개 건물은 하나씩 해체될 운명에 놓여있다.

세운녹지축 건설 사업은 오는 2015년까지 계속된다. 이 사업이 끝나면 일제시대 소이탄 피해를 막는 소개지에서 전후(戰後) 빈민들의 불안한 삶의 터전으로, 그리고 경제개발시대를 대표하는 도심 랜드마크 건물이었던 세운상가와 그 일대는 서울 시민을 위한 녹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 매일경제 | 090630 | 장박원 이유진 기자
by 에스진 | 2009/06/30 16:28 | 건축기행 | 트랙백 | 덧글(0)

비행기 모델번호 의미

Q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정시 운항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대한항공은 평가 대상 8개 기종 가운데 4개 기종(B737-800, A300-600, B777, B747-400)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B747, B777, A330, A380과 같은 여객기의 모델명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하다. <서울 여의도 김민정>

A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영하는 여객기는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제작한 것들이다. 우선 보잉의 여객기는 이니셜 ‘B’로 시작해 707부터 787까지 크게 9개 기종이 있다. 현재 생산 중인 기종은 737, 747, 767, 777이다. 707, 717, 727, 757은 단종됐다. 787은 현재 개발 중이다.

보잉 기종의 이름은 이처럼 7로 시작해서 7로 끝난다. 혹자는 비행기 날개가 휘어진 각도를 보고 만들었다, 혹자는 7이라는 숫자가 내포하는 좋은 의미를 반영해 만들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이유는 사실 평범하다. 모델명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잉은 군용 항공기를 생산했다. 윌리엄 앨런 보잉 사장은 보잉의 사업영역을 상용기 쪽으로 전환하고, 미사일과 우주선 등 신규 사업 분야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제품 카테고리에 따라 100단위의 모델번호를 붙였다. 항공기는 300, 400단위를 사용했고 터빈엔진 구동의 항공기에는 500단위를, 로켓과 미사일에는 600단위, 제트엔진을 장착한 수송기에는 700단위의 모델명을 붙인 것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잉은 미 공군을 위해 개발한 프로펠러 급유기 367 스트라토탱커에 제트엔진을 장착한 대시80을 기본으로 700단위의 첫 모델을 완성했다. 보잉의 마케팅 부서는 ‘모델 700’이 첫 모델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끝자리 숫자에 7을 한 번 더 반복해 ‘707’로 바꿔봤더니 더 부르기 쉽고 눈길을 끌 수 있었다. 1958년 팬암 항공사가 뉴욕과 파리에 707을 첫 취항했다.

몇몇 예외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7과 7 사이의 숫자는 항공기가 개발된 순서대로 0에서 8까지 붙여진다. 한편 747-400, 737-900ER, 777-300, 777-300ER 등 700 단위 뒤에 별도로 -100, -200, -300, -400 등의 숫자 혹은 알파벳이 붙는다. 이는 각 기종의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엔진, 전자장비, 향상된 연비 등 다양한 사양이 개선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67년에 출시된 737의 경우 몇 단계 업그레이드를 거쳐 현재 737-900ER이 최신형 모델이다. ER(Extended Range)과 LR(Longer Range)은 기본 동일 기종에서 항속 거리를 연장하고, 탑재량을 늘렸다든지,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맨 뒤의 F(Freighter)는 화물기를 의미한다.

‘A’로 시작하는 에어버스의 모델명은 보잉과는 다소 다르다. 첫 항공기를 제작할 당시 300명의 승객을 태우는 것을 목표로 A300을 첫 모델명으로 하려고 했는데, 69년 5월에 완성된 모델은 객석이 224석밖에 되지 않았다. 이 항공기를 그래서 A300B1으로, 두 번째 250석의 항공기는 A300B2로 지었다. 숫자는 점점 늘어 78년 A300B10을 출시하면서 A310으로 명명됐다. 84년 출시한 항공기는 A320으로 불렀다. 87년 출시한 A300B9과 A300B11은 각각 A330과 A340이 됐다.

복층 구조의 A380 항공기는 다른 기종과 차별화한다는 의미에서 전혀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특히 아시아지역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행운의 숫자로 불리는 ‘8’을 적용해 A380으로 명명했다.


+ 중앙일보 | 090630 | 심재우 기자
by 에스진 | 2009/06/30 16:20 | 비행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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